자석이 특정 금속에만 반응하는 전자 구조
어릴 때 자석을 들고 집 안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에 붙여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철로 된 것에는 딱 붙었는데 알루미늄 냄비에는 미끄러지고, 동전에도 반응이 없었다. 모두 금속인데 왜 어떤 것에는 붙고 어떤 것에는 안 붙는지 그때는 그냥 신기하게만 여겼다. 그 차이가 금속 표면의 문제가 아니라 원자 하나하나의 전자 배열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성은 전자의 스핀이라는 특성에서 시작되고, 그 스핀이 얼마나 많이, 얼마나 질서 있게 정렬돼 있느냐가 자석에 반응하는지 아닌지를 결정한다.

1. 자성의 출발점 — 전자 스핀과 자기 모멘트
자성의 근원은 전자다. 전자는 전하를 띤 입자이면서 스핀(spin)이라는 고유한 각운동량을 갖는다. 스핀은 위(↑) 또는 아래(↓) 두 방향 중 하나로만 존재하며, 회전하는 전하는 작은 자석처럼 자기장을 만든다. 이것이 자기 모멘트(magnetic moment)다.
원자 안에서 전자들이 오비탈을 채울 때 파울리 배타 원리에 따라 같은 오비탈에 두 전자가 들어가면 스핀이 반드시 반대 방향(↑↓)으로 쌍을 이룬다. 반대 방향 자기 모멘트는 서로 상쇄되어 알짜 자기 모멘트가 0이 된다. 전자가 모두 쌍을 이룬 원자는 자기 모멘트가 사실상 없다. 반면 쌍을 이루지 않은 홀전자(unpaired electron)가 있으면 그 전자의 자기 모멘트가 남아 원자 전체에 자성이 생긴다. 홀전자가 많을수록 원자의 자기 모멘트가 크고 자석에 강하게 반응하는 성질을 가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2. 강자성이 특별한 이유 — 철·니켈·코발트만 자석에 강하게 붙는 까닭
홀전자가 있는 원소는 많지만 일상적인 자석에 강하게 붙는 금속은 철(Fe), 니켈(Ni), 코발트(Co) 세 가지뿐이다. 이 세 원소는 d 오비탈에 홀전자가 많다. 철은 4개, 코발트는 3개, 니켈은 2개의 홀전자를 갖는다. 그런데 홀전자가 있다고 해서 모두 자석에 강하게 붙지는 않는다.
강자성(ferromagnetism)이 특별한 이유는 자기 도메인(magnetic domain) 구조 때문이다. 강자성 물질 내부에는 수백만 개의 원자들이 자기 모멘트를 같은 방향으로 일제히 정렬시킨 미시적 영역들이 있다. 이 영역을 자기 도메인이라 한다. 외부 자기장이 없는 상태에서는 도메인들이 제각각 다른 방향을 가리켜 전체 자성이 상쇄된다. 자석을 가져다 대면 도메인들이 자기장 방향으로 일제히 정렬하면서 강한 자성이 나타난다. 이 도메인 정렬이 가능한 이유는 철·니켈·코발트에서 원자 간 교환 상호작용(exchange interaction)이라는 양자역학적 힘이 이웃 원자들의 스핀을 같은 방향으로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이 힘이 없으면 홀전자가 있어도 도메인이 형성되지 않는다.
| 철 (Fe) | 4개 | 강자성 | 강하게 붙음 |
| 코발트 (Co) | 3개 | 강자성 | 강하게 붙음 |
| 니켈 (Ni) | 2개 | 강자성 | 붙음 |
| 구리 (Cu) | 0개 (d¹⁰ 완전 채움) | 반자성 | 반응 없음 (약하게 밀림) |
| 알루미늄 (Al) | 0개 (d 오비탈 없음) | 상자성 | 극히 약한 이끌림 |
| 금 (Au) | 0개 (d¹⁰) | 반자성 | 반응 없음 |

3. 상자성과 반자성 — 붙지 않는 금속들의 전자 구조
강자성 외의 금속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자석에 반응하거나 반응하지 않는다.
상자성(paramagnetism) 물질은 홀전자는 있지만 도메인 구조가 없다. 외부 자기장이 없으면 원자들의 자기 모멘트가 무질서하게 배열되어 전체 자성이 0에 가깝다. 강한 외부 자기장을 가하면 모멘트들이 부분적으로 정렬돼 약하게 이끌리지만, 그 힘이 너무 약해 일상에서는 느끼기 어렵다. 알루미늄, 백금, 망간이 여기 해당한다. 알루미늄 캔에 네오디뮴 자석을 가져가면 아주 미세하게 이끌리는 힘이 정밀 측정기로 측정되지만, 냉장고 자석으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수준이다.
반자성(diamagnetism)은 전자가 모두 쌍을 이뤄 알짜 자기 모멘트가 0인 물질에서 나타난다. 외부 자기장이 가해지면 전자의 궤도 운동이 변화하며 자기장을 밀어내는 방향의 아주 약한 자기 모멘트가 유도된다. 구리, 금, 은, 납이 여기 해당한다. 자석을 가져가면 반응이 없거나 오히려 극히 미미하게 밀린다. 반자성의 극단적 사례가 초전도체다. 초전도체는 완벽한 반자성을 가져 자석 위에서 완전히 떠오르는 마이스너 효과(Meissner effect)를 보인다.
4. 퀴리 온도 — 자성이 사라지는 임계 온도
강자성 물질도 온도가 높아지면 자성을 잃는다. 열에너지가 원자들의 스핀 정렬을 흐트러뜨리기 때문이다. 자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임계 온도를 퀴리 온도(Curie temperature)라 한다. 철의 퀴리 온도는 약 770°C, 니켈은 358°C, 코발트는 1,115°C다. 퀴리 온도 이상에서는 도메인 구조가 붕괴되어 강자성 물질도 상자성처럼 행동한다.
이 원리가 일상에서 확인되는 장면이 있다. 불에 달궈진 철 막대는 자석에 붙지 않다가 식으면 다시 붙는다. 770°C 이상에서 도메인이 붕괴됐다가 온도가 내려오면서 다시 형성되기 때문이다. 영구자석이 고온 환경에서 자성을 잃는 것도 같은 원리다. 네오디뮴 자석의 퀴리 온도는 약 310~400°C 수준으로 철보다 낮아 고온 환경에서 쓰일 때 주의가 필요하다. 반대로 코발트는 퀴리 온도가 가장 높아 고온 환경이 필요한 산업용 자석 재료로 활용된다. 금속의 열 특성에 대한 추가 내용은 이 글에서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된다.
마무리하며
자석이 철에는 붙고 구리나 알루미늄에는 붙지 않는 이유는 표면 특성이나 재질의 단순한 차이가 아니다. 원자 내부 d 오비탈에 홀전자가 얼마나 있는지, 그 원자들이 교환 상호작용으로 자기 도메인을 형성할 수 있는지가 결정한다. 어릴 때 냉장고 자석을 들고 여기저기 붙여보던 그 호기심이 사실 양자역학의 핵심 원리인 전자 스핀으로 이어지는 질문이었다는 게 흥미롭다. 냉장고 문에 붙어 있는 작은 자석 하나에도 원자 수준의 전자 배열이 작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