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산에 올라가서 밥을 지으면 밥이 설익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은 100℃에서 끓는다고 배웠는데, 고도가 높아지면 이 상식이 깨진다. 실제로는 기압이 낮아질수록 물의 끓는점도 함께 낮아지기 때문이고, 이 원리를 거꾸로 이용하면 진공 상태에서는 상온에서도 물을 끓일 수 있다.

1. 끓는다는 것의 진짜 의미
물이 끓는다는 건 액체 내부에서 수증기 기포가 생겨 표면으로 올라오는 현상이다. 이 기포가 만들어지려면 물 내부의 증기압이 주변 대기압과 같아져야 한다. 100℃라는 숫자는 해수면 기준 1기압일 때만 성립하는 값이다. 기압이 달라지면 물이 끓는 온도도 함께 달라진다.
2.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압이 낮아지고 끓는점도 낮아진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공기가 희박해져 대기압이 낮아진다. 대기압이 낮으면 물 내부 증기압이 그보다 낮은 온도에서도 대기압과 같아질 수 있어, 더 낮은 온도에서 끓기 시작한다.
| 해수면(0m) | 1기압 | 100℃ |
| 백두산 정상(약 2,750m) | 약 0.72기압 | 약 90℃ |
| 에베레스트 정상(약 8,849m) | 약 0.33기압 | 약 70℃ |
끓는점이 낮아지면 문제가 생긴다. 밥을 지을 때 쌀 전분이 충분히 호화(젤라틴화)되려면 일정 온도 이상이 유지되어야 하는데, 산 정상에서는 물이 90℃ 안팎에서 끓어버려서 그 이상 온도가 오르지 않는다. 삶는 시간을 늘려도 온도 자체가 부족해 설익는 결과가 나온다.
3. 압력솥이 반대로 작동하는 원리
압력솥은 이 원리를 거꾸로 이용한다. 밀폐된 용기 안에서 수증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면 내부 압력이 1기압보다 높아지고, 그만큼 물의 끓는점도 100℃보다 높은 110~120℃까지 올라간다. 고도가 높은 곳에서 밥을 지을 때 압력솥을 쓰면 인위적으로 내부 압력을 높여 정상적인 온도에서 조리할 수 있다.
4. 진공 상태에서는 상온에서도 물이 끓는다
같은 원리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면, 압력을 거의 0에 가깝게 낮춘 진공 상태에서는 상온의 물도 끓어오른다. 실험실에서 진공 펌프로 압력을 낮추면 20~30℃의 물도 기포를 내며 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물이 뜨거워진 게 아니라 압력이 충분히 낮아져 그 온도에서도 증기압 조건이 충족된 것이다.
마무리하며
물이 100℃에서 끓는다는 건 고정된 법칙이 아니라 1기압이라는 특정 조건에서만 성립하는 값이다. 고도가 높아지면 끓는점이 낮아지고, 압력솥으로 압력을 높이면 끓는점도 함께 올라간다. 등산할 때 고지대에서 밥이 잘 안 된다면 화력을 더 세게 하기보다 압력솥을 챙기는 게 훨씬 확실한 해결책이다.
참고 자료: 국립기상과학원(nim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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