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업무가 몰리는 프로젝트를 맡았던 시기가 있었다. 야근이 잦아지고 신경 쓸 일이 많아지면서 유독 그때 뱃살이 눈에 띄게 늘었는데, 식단이 크게 달라진 것도 아니었다. 당시엔 그냥 앉아있는 시간이 늘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스트레스 자체가 지방을 복부에 우선적으로 저장하도록 몸을 유도하는 생리적 메커니즘이 있었다.

1. 코르티솔이 왜 지방을 복부로 보내는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부신에서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코르티솔은 본래 위기 상황에서 빠르게 에너지를 동원하기 위한 호르몬인데, 만성적으로 분비량이 높은 상태가 지속되면 문제가 생긴다. 복부 지방세포는 다른 부위 지방세포보다 코르티솔 수용체 밀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때문에 코르티솔이 만성적으로 높은 사람은 지방이 다른 부위보다 복부에 우선적으로 축적되는 경향을 보인다.
자도 자도 피곤한 이유 — 코르티솔 리듬이 무너진 것일 수 있다에서 다뤘듯, 코르티솔은 원래 아침에 높고 밤에 낮아지는 하루 리듬을 갖고 있다. 그런데 만성 스트레스 상태에서는 이 리듬 자체가 무너지면서 하루 종일 코르티솔이 높게 유지되고, 이게 복부지방 축적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만들어진다.
2. 단순히 더 먹어서가 아니다
내가 그 시기를 돌아보면 식사량이 크게 늘진 않았던 것 같은데도 뱃살이 눈에 띄게 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코르티솔은 식욕 자체도 자극하는데, 특히 고칼로리·고당분 음식에 대한 선호를 높이는 경향이 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유독 단 음식이나 기름진 음식이 당기는 게 단순한 심리적 위안이 아니라 호르몬 작용이라는 뜻이다. 식사량이 크게 안 변했다고 느껴도 스트레스 시기에는 무의식적으로 열량 밀도가 높은 음식을 더 선택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3. 내장지방이라 더 위험하다
복부에 쌓이는 지방 중에서도 코르티솔의 영향을 크게 받는 건 피하지방보다 내장지방이다. 내장지방은 팔뚝이나 허벅지의 피하지방과 달리 대사적으로 더 활발하게 염증 물질을 분비하며, 심혈관 질환과 인슐린 저항성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겉으로 보기에 살이 많이 찌지 않은 것 같아도 배만 유독 나온 체형이라면 내장지방이 상당히 쌓여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4.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관리 방법
스트레스 자체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만성 코르티솔 수치를 관리하는 방법은 있다. 규칙적인 수면, 유산소 운동, 명상이나 호흡 훈련이 코르티솔 리듬을 정상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근이 잦았던 그 시기를 돌아보면 수면 시간부터 줄었던 게 문제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마무리하며
그때 뱃살이 늘었던 게 단순히 운동을 덜 해서가 아니라 코르티솔이 지방 저장 위치 자체를 바꿔놓았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나니 이해가 됐다. 스트레스 받는 시기에 유독 뱃살이 는다고 느낀다면, 식단이나 운동량을 탓하기 전에 수면과 스트레스 관리부터 먼저 점검해보는 게 순서상 맞다.
참고 자료: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kdc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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